가로 12.5cm 세로 20cm 연극운동가. 함경남도 함흥(咸興) 출신. 독립운동을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출감한 뒤,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2년 예림회(藝林會)를 발족, 《희망의 눈물》 《돌아오는 아버지》 《결혼신청》 등을 상연하였고, 그 뒤 간도(間島)에서 순회공연을 하였다. 1929년 조선연극사(朝鮮硏劇舍)를 조직, 배우 변기종(卞基鍾)을 대표로 앉히고 자신은 전무를 맡아 진용을 대형화하였다. 고향의 전답을 모두 팔고 세 딸까지 배우로 출연시키는 등 연극운동에 진력하였으나 1935년 동양극장이 설립되자 조선연극사를 자진 해체하고 낙향하였다. 직접 제작·기획한 작품으로는 《카프미의 재즈(1929)》 《눈오는 밤(1930)》 《여학생일기(1932)》 《섬색시(1935)》 등이 있다.